시간은 선형적일까요, 아니면 주관적 경험에 따라 그 흐름이 달라질까요? 이 글에서는 아인슈타인과 베르그송 간의 역사적인 논쟁을 살펴보아요.
1922년 4월 6일, 베르그송과 아인슈타인은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을 두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시간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경험에 따라 주관적인 것인가?
표면적으로는 물리학자와 철학자가 논쟁의 반대편에 서 있는 듯 보였지만, 그들의 시간 개념은 양립 가능할까요? 이 글에서는 두 이론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본 후, 이 두 상반된 견해 사이의 중간 지점을 탐구해 보겠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시간 이론
1922년,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 간의 논쟁은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습니다. 이 논쟁은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발표한 특수 상대성 이론과 1915년에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과학계에서 흔히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으로 불리는 이 발견은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시간과 동시성에 대한 격렬한 논의를 촉발시켰습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이라는 틀에 기반을 둡니다. 이는 3차원 물리적 공간의 모든 점과 시간적 차원을 포함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이 이론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자세히 살펴보아야 이 개념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이론의 형성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헨드릭 로렌츠의 상대성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는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에 의해 뒷받침되었습니다. 이 이론은 “에테르”라는 신비로운 매질을 통해 운동이 공간적 및 시간적 간격에 변화를 초래한다는 점을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에테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수학자들에 따르면, 에테르는 “전자기 현상과 빛의 파동 전달을 위한 모든 곳에 존재하는 매질”로 가정된 것입니다. 에테르는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물질로 이루어진 물체 사이의 공간에 존재한다고 주장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동일한 시공간 분석과 유사한 수학적 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해석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에테르나 운동의 보편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이 가설은 시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첫 번째는 “시계가 느려진다”는 개념, 즉 시간 지연(time dilation)의 아이디어입니다. 이는 상대성 이론에서 중요한 요소로 다중적 시간의 개념을 촉발했습니다.
두 번째는 두 개의 다른 공간적 위치에서 발생한 사건의 시간적 동시성(simultaneity)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진정한 보편성을 가지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확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시공간 이론이 탄생했습니다.
상대성 이론의 주요 발견: 시간 지연
상대성 이론의 주요 새 발견 중 하나는 시간 지연이었습니다. 이는 과학계와 철학계를 모두 놀라게 한 중요한 발견 중 하나였습니다. 이 개념은 빠른 속도, 즉 물체의 운동 방향에 대한 속도가 높아질수록 시간이 느려지며, 속도가 무한대에 이르면 시간이 멈춘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상대성 이론의 이해
아인슈타인의 과학 실험에서는 두 개의 시계가 동시에 설정됩니다. 하나는 일정한 속도로 이동하고, 다른 하나는 정지 상태를 유지합니다.
실험이 끝난 후 각각의 시계 시간을 확인해 보면 항상 시간 차이가 존재합니다. 관찰자들은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지만, 시계는 다른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정지 상태의 시계와 이동 중인 시계 간의 이러한 차이는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시간의 상대성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아인슈타인에게 있어 두 시계의 시간은 각각의 속도에 따라 점유하는 공간에 따라 모두 옳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시간을 "시계 시간(clock time)"이라 불리는 측정 기준에 필연적으로 연결된 본질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과학에서 절대적 동시성에 대한 기존의 믿음을 반박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두 시계는 각각 다른 시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동시성의 상대성(relativity of simultaneity)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이론은 두 관찰자가 상대적 운동 상태에 있고, 한 관찰자에게 두 사건이 동시에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관찰자에게는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주장합니다. 즉, 동시성은 절대적이지 않고 관찰자마다 상대적입니다.
논쟁 속 아인슈타인의 입장
논쟁에서 아인슈타인은 시간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명확하고 객관적인 의미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객관적인 사건은 개인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이 주장은 시간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시간을 정의하기 위해 반드시 개인이나 인간과의 관계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시계 시간(clock time)은 객관적인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객관적인 사건의 경과를 구분하는 측정 가능한 단위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개인과 독립적입니다. 이는 인간의 주관성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구체적이고 연속적인 단위가 존재합니다.
아인슈타인에게 있어 시간은 물리적이고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주관적인 시간 개념은 단지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심리적 현상일 뿐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기능하기 위해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앙리 베르그송의 시간에 대한 관점
아인슈타인과의 논쟁 이전에 앙리 베르그송은 이미 시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연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의 이론적 틀은 주관성과 인간이 시간에 대해 직접 경험하는 즉각적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베르그송이 시간 개념과 관련해 다루었던 주요 두 가지 개념은 생명의 충동(Élan Vital)과 지속(Durée)입니다.
베르그송에게 있어 생명의 충동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독창적이고 새로운 생산적 창조를 이끄는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이는 우주와 인간이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경험적이고 자연과학적 접근이 이러한 창조 내부와 외부의 생명의 충동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점은 그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시간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베르그송에게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에게 “삶은 모든 것을 관통한다”는 믿음이 있었으며, 생명의 충동을 무시하면 시간에 대한 불완전한 분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곧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베르그송은 시간이 지속(durée)의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지속은 결코 질적으로 측정될 수 없는 시간의 한 측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를 아인슈타인의 “시계 시간(clock time)”과 대조되는 “삶의 시간(lived time)”이라고 불렀습니다. 시간의 주관성은 오직 개인의 의식을 통해 경험함으로써만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르그송은 이러한 개념을 통해 시간의 보편적 성질을 발견했다고 믿었으며, 이는 아인슈타인의 시간 팽창 이론과 모순되는 듯 보였습니다.
이러한 베르그송 철학의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베르그송의 상대성 이론 비판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는 이론이 성립하기 위해 반드시 정확해야 하는 특정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빛의 상대 속도가 관찰자가 정지 상태에 있든, 움직이고 있든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르그송에게 있어 이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는 로렌츠-푸앵카레 이론에서와 같은 보편적 기준(예: 에테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대칭적이며 상호적인(symmetrical and reciprocal)” 것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개념은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두 관찰자 모두 자신이 정지 상태에 있거나 운동 중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 전체에 있어 정지와 운동의 상태가 누구에게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단지 정지 상태의 물체를 올바른 대응 위치에 유지하는 것만이 필요합니다.
베르그송은 시간 팽창 현상이 발생했는지 여부를 문제 삼지는 않았습니다. 논쟁의 핵심은 관찰자들의 대칭적이고 상호적인 위치가 추론된 비대칭적 물리적 효과와 일치하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논쟁을 통해 그는 아인슈타인이 시간의 본질을 “실제적(real)”이고 측정 가능하다고 보았던 개념이 사실은 “양면적(bilateral)”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는 시간이 지니는 다양한 속성들을 배제한 것이었습니다.
베르그송의 논쟁에서의 입장
베르그송의 반박은 상대성 이론의 물리적 및 실험적 타당성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이론의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함의에 더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는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틀의 추상적 개념이 실험적이고 형식적인 증명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주목했습니다. 당시 이미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대한 회의론이 있었지만, 베르그송은 이 이론에 신뢰를 두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에게도 이 이론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르그송은 시간이 경험적(empirical) 성질이 아니라 복잡한 속성을 가진 개념으로 양적인 단위로 환원되는 것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아인슈타인의 “시계 시간(clock time)” 개념에 반대했습니다. 단순히 측정 장비에 나타나는 숫자만으로는 시간과 시간성의 본질적 속성과 다양한 측면들을 나타낼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시간은 존재의 필수적이고 불가분의 일부로, 다양한 측면으로 분리하거나 분절화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베르그송은 지속(durée)과 관련된 시간의 개념이 현실의 본질, 즉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존재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두 요소의 분리는 단순히 임의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전체적인 상대성 이론 내에서 비논리성을 초래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베르그송은 상대성 이론의 인식론적(epistemological) 내용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 이론이 단절시키고 불완전하게 남겨둔 시간의 형이상학적 본질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공통점을 찾으려는 시도
아인슈타인은 베르그송의 비판을 완전히 거부했고, 베르그송 또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체적인 개념은 완전히 다를지라도, 특정 유사한 아이디어에 기반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인슈타인이 시간에 대해 취한 매우 급진적인 접근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시간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존재론적 시간 개념은 베르그송의 입장과 대립적입니다. 그러나 물리적 측면에서 아인슈타인은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시간이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라는 점에서, 베르그송이 형이상학에서 주장했던 개인의 경험에 따른 시간의 상대성을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르그송과 아인슈타인은 시간의 실재에 대해 서로 다른 이론을 믿고 있었지만, 둘 다 공통된 출발점에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 출발점은 “보편적 에테르(universal ether)”의 부재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적 출발점은 베르그송이 전통적이고 상식적인 시간 관념을 거부한 점과 유사합니다. 따라서 두 접근법 모두 시간의 본질과 그에 관련된 다양한 측면을 탐구하는 데 있어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과 베르그송의 논쟁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결론적으로, 철학자와 물리학자는 시간의 본질에 대해 각각 독창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르그송은 순수한 경험적 관점에서의 시간을 믿었으며, 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체계와 양립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의 존재론적 의미와 개인과의 관계에서 그 본질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의 물리적 측면이 개인의 경험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반면에 베르그송은 시간을 아인슈타인처럼 분리된 개념으로 보지 않고, 인간 의식의 조건으로서 자연스럽고 통합적인 존재로 보았습니다.
이 논쟁은 단순히 시간에 관한 논의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물리학과 철학이라는 두 학문의 정당성을 다루는 논쟁이기도 했습니다. 이 논쟁은 직관과 객관성의 분석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두 사람 간의 전반적인 논의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 수 있듯이, 두 사상가는 일정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긴장감은 시간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질문을 열어주고 발전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