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은 서양 드라마의 어머니일까요? 아니면 아버지일까요?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릅니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극작가 중 한 명인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 왕은 극적 구조의 걸작으로, 충격적이고 세밀하게 전개되는 극적 아이러니가 가득합니다.
현대에 들어서 이 작품은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한 소년이 성장하며 직면한다고 생각한 중심 심리적, 감정적 도전 과제를 설명하는 데 이름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자신의 아버지를 모르고 살해한 뒤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한 젊은 남자의 이야기로, 프로이트가 설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에 딱 들어맞습니다.
물론 프로이트의 개념에서 아들이 반드시 아버지를 살해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머니를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 욕망을 지닌다고 봅니다.
탐정이 된 오이디푸스
소포클레스가 창조한 오이디푸스의 개인적인 이야기 대부분은 연극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발생한 복잡한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비극은 이미 예정되어 있으며,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금기된 과거를 발견하기 위해 자유 의지를 행사하지만 결국 정해진 운명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점에서 오이디푸스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작품 햄릿과 비슷하게 탐정과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차이점은 오이디푸스가 집요하게 찾는 범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수세기 동안 문학계에서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범죄와 운명에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의 과거를 되짚으며, 오이디푸스는 과연 잘못된 시간과 장소에서 저지른 잘못을 피할 수 있었을까요?
연극의 시작: 역병에 휩싸인 테베
연극이 시작될 때, 테베는 아테네 북서쪽의 강력한 도시국가였습니다. 왕궁 앞에는 시민들과 제사장들이 모여 도시를 황폐화시키는 끔찍한 역병으로부터 테베를 구해달라고 오이디푸스 왕에게 간청합니다.
오이디푸스는 이미 자신의 처남인 크레온을 신탁을 받기 위해 보냈다고 말하며 시민들을 안심시킵니다. 돌아온 크레온이 가져온 "희소식"은 테베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조건은 바로, 전임 왕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을 추방하거나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이디푸스의 결단
결단력 있는 오이디푸스답게, 크레온의 말을 듣자마자 즉시 행동에 나섭니다. 그는 테베의 연로한 예언자이자 앞을 보지 못하는 티레시아스를 불러 진실을 알아내려 합니다.
티레시아스는 처음에는 진실을 밝히기를 꺼리지만, 오이디푸스의 강압적인 태도와 위협에 결국 진실을 말합니다. 티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에게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대가 바로 이 땅을 더럽히는 저주받은 자이니라.”
신탁(오라클)의 예언
연극이 시작되고 약 20분이 지나면 관객들은 줄거리의 핵심 미스터리에 대한 답을 알게 됩니다. 아니면 그렇지 않을까요? 많은 이들은 오이디푸스와 같은 입장을 취할 것입니다.
그는 티레시아스가 진정한 예언자인지, 아니면 더 나아가 자신의 왕관을 빼앗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크레온의 거짓된 "대변인"인지 의심합니다.
조사에 나선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증인을 소환하며, 자신이 범인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하려 합니다. 우선, 그는 자신의 아내이자 크레온의 여동생인 이오카스테에게서 오래된 예언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녀의 첫 남편 라이오스가 자신의 아이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의 부모는 멀리 떨어진 코린토스의 귀족 폴리부스와 그의 아내 메로페였으니, 이는 그가 범인일 가능성을 배제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조사를 멈췄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진범을 찾을 수 없기에, 오이디푸스는 마치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나 클루조 경감처럼 집요하게 탐구를 계속합니다.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오이디푸스의 사건은 "점점 더 이상하고 기이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는 자신의 어두운 개인적 미로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세 갈래 길에서의 살인
이오카스테는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하며 남편에게 조사를 멈춰달라고 간청하지만,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살인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계속 질문을 쏟아냅니다.
그녀는 살인이 일어난 장소가 "세 갈래 길이 만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오이디푸스는 과거 자신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수십 년 전, 자신이 길을 가던 중 길을 막던 수레를 이끄는 몇몇 남자들과 충돌했던 사건입니다. 양측 모두 비켜서려 하지 않았고, 결국 칼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오이디푸스는 혼자서 수행원들을 모두 살해했고, 수레에 타고 있던 주군마저 죽였습니다.
이 두 이야기가 소름 끼치도록 유사하지만, 이오카스테는 중요한 차이를 지적합니다. 라이오스는 여러 명의 공격자에게 습격당했다고 알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질문은 점점 더 많은 의문을 낳습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이 시점에서 여러분도 오이디푸스의 과거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하나 떠올릴지 모릅니다. 오이디푸스는 어떻게 왕이 되었을까요?
수년 전, 오이디푸스가 테베로 가는 길에,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도시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목을 막고 있었습니다. 이 괴물은 여자의 머리와 사자의 몸, 그리고 날개를 가진 존재로, 지나가려는 모든 여행자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이를 맞추지 못하면 잡아먹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이 도전에 나섰습니다. 스핑크스가 묻습니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로 걷고, 밤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은 무엇인가?” 오이디푸스는 이 질문의 속임수를 간파하고 정답을 맞춥니다.
“인간”이라고 답한 그는, 아기는 네 발로 기고, 성인이 되면 두 발로 걷고, 노인이 되면 지팡이를 짚고 걷는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스핑크스는 길목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습니다. 오이디푸스가 테베에 도착했을 때, 시민들은 스핑크스를 물리친 그의 영웅적 행동에 감사를 표하며 그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혹은 의도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때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왕위를 비웠는데, 그는 바로 "세 갈래 길이 만나는 곳"에서 살해당한 희생자였습니다.
진실을 향한 끝없는 추적
오이디푸스는 또 다른 중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오카스테가 말했던, 라이오스의 명령으로 예언을 막기 위해 살해되었다고 알려진 그녀의 아이는 정말로 죽었을까요?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시민들과 하인들을 불러들여 집요하고 때로는 적대적인 질문을 이어갑니다. 그는 퍼즐 조각을 맞추려 하고, 관객이나 독자 역시 이 과정을 함께 추적할 수 있습니다.
비극적 아이러니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밝히려는 철저하고 존경스러운 결의는 결국 자신의 파멸을 초래합니다. 소포클레스는 연극 전반에 걸쳐, 오이디푸스가 맹세하거나 약속했던 말들이 결국 그가 라이오스의 미해결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드러내는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왕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는, 주인공이 자신의 진정한 기원을 알아내고자 하는 고귀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탐구를 시작하지만, 그 답이 결국 자신의 운명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운명의 타격
중요한 증인들의 등장
법정에 두 명의 결정적인 증인이 등장합니다. 먼저,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가 오이디푸스에게 두 가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합니다.
첫 번째는 폴리부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이며, 두 번째는 폴리부스가 오이디푸스의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오이디푸스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가 했던 것처럼 “나는 운명의 바보로구나!”라고 탄식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오이디푸스는 과거에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다른 신탁을 듣고는 폴리부스와 메로페의 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운명처럼 길을 막는 여행자들과 얽히게 된 것입니다.
사자는 이어 오이디푸스가 아기였을 때 산에서 버려진 것을 자신이 구해 폴리부스에게 입양시켰다고 이야기합니다.
흥미롭게도 아기의 발목은 묶여 있었고, 그로 인해 평생 발에 흉터가 남았으며, ‘오이디푸스’라는 이름도 “부어오른 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오카스테는 궁전을 떠나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절대 알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비극적 오해
오이디푸스는 비록 진실에 다가가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잘못된 결론을 내립니다. 그는 이오카스테의 경고가 자신이 왕족 혈통이 아니며 비천한 신분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자는 마지막으로, 아기가 테베의 목자에게서 전달받은 것이며, 그 목자가 라이오스 왕의 집에서 일하던 인물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즉시 목자를 소환합니다. 목자는 겁에 질려 기억이 희미하다고 주장하며 진실을 말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relentless하게 추궁하고, 심지어 고문을 위협하며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합니다. 결국 목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백합니다.
아기는 라이오스의 자식이었으며, 왕비가 신탁의 무서운 예언—자식이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막기 위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는 아기를 죽이지 않고 연민의 마음에서 살려주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왕실뿐만 아니라 테베 전체를 불행에 빠뜨리게 된 것입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연극의 끔찍하고 잔인한 절정은 무대 밖에서 일어나며 관객들에게 과거 시제로 전달됩니다.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고전 드라마 역사상 가장 극심한 자기 처벌을 받게 됩니다.
“시각”이라는 주제가 두드러지는 연극에서,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시력을 잃는 것은 비극적으로 어울리는 결말입니다. 더욱 섬뜩하게도, 그는 이오카스테의 옷에서 뽑은 보석 핀을 사용해 자신의 눈을 찌릅니다.
희망 없는 인간 조건
연극 오이디푸스 왕은 연극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자주 공연되는 작품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인간 조건에 대해 심오한 비관주의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으며, 주인공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비참하게 만든 여러 줄거리적 우연과 장치들이 과도하게 쌓여 있다는 점에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랜 결혼 생활 동안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의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점은 의문을 자아냅니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의 급하고 성급한 성격 결점을 강조하며 그가 자신의 죄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려 하지만, 결국 오이디푸스는 신들의 희생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옳은 일을 하려는 진지한 시도를 했음에도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 갇히게 됩니다.
진실과 파멸
만약 오이디푸스가 프로이트 박사의 치료를 받았다면, 자신이 범죄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그의 백성들이 그에게 간청했던 것이고, 그가 맹렬한 결의로 실행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가 얼마나 끔찍했던가요? 위대한 오이디푸스 왕은 결국 비참하게 파멸한 오이디푸스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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