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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역사

티폰(Typhon): 올림포스를 위협한 그리스 신화의 괴물

by 역사를 알고 역사를 써 내려 간다. 2025.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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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폰(Typhon)은 그리스 신화 속에서 거대한 폭풍의 괴물로, 올림포스의 지배권을 두고 제우스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 존재입니다.

 

티폰이란 누구인가요?

티폰, 혹은 티포이오스(Typhoeus)라고도 불린 이 존재는 수백 개의 머리를 지닌 괴물로, 눈에서는 불꽃을 쏘아내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양한 소리와 목소리로 말을 했는데, 때로는 황소처럼 울부짖고, 개처럼 짖으며, 사자처럼 포효하기도 하였습니다. 티폰은 제우스에게 도전한 가장 강력하고 마지막 적수였으며, 그의 패배는 제우스의 즉위와 올림포스 신들 간의 권력 분배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티폰의 부모는 누구인가요?

[티폰 앤티픽스 조각 - 에트루리아 시대, 대략 기원전 500-450년, 카푸아에서 출토됨. 출처: 영국박물관] 비단뱀 두 마리를 붙잡고 있는 수염 난 티폰의 앤티픽스(기와 장식), 에트루리아, 카푸아 출토, 기원전 약 500-450년. 출처: 영국박물관

 

티폰에 대한 가장 이른 언급은 기원전 8세기경 헤시오도스의 『신통기(Theogony)』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티폰이 가이아(Gaia)와 타르타로스(Tartarus)의 자식이라고 말합니다. 티폰은 가이아의 막내아들로, 제우스가 티탄(혹은 거인족)을 무찌르고 감금한 이후에 태어났습니다. 1세기 작가 아폴로도로스(Apollodorus)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많은 이들이 티폰이 제우스의 신들에 대한 처사에 분노한 가이아에 의해 복수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문헌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이아가 티폰을 낳은 것은 아마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계승 신화(succession myth)’의 흐름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신화에서는 우라노스(Ouranos)가 자신의 아들 크로노스(Cronos)에게 폐위되고, 다시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들 제우스에게 패하게 됩니다. 제우스 또한 메티스(Metis)와의 사이에서 자신의 왕위를 위협할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듣습니다.

 

이에 제우스는 메티스를 삼켜버리고, 그 후에 아테나 여신이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메티스는 제우스 안에서 살아가며 남자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고, 이로써 계승의 고리가 끊기게 됩니다. 이 설정은 티폰을 제압하는 제우스의 승리가 궁극적이며, 이전의 신들과는 달리 영원한 통치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티폰의 또 다른 기원 이야기

다른 버전의 티폰 탄생 이야기는 『델로스의 아폴론 찬가(Homeric Hymn to Delian Apollo)』에서 나타납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티폰의 어머니가 가이아가 아니라 헤라(Hera)로 등장합니다. 헤라는 제우스가 스스로 아테나를 낳은 것에 분노하여, 자신도 남성의 도움 없이 아이를 낳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땅을 내리치며, 가이아와 우라노스, 그리고 타르타로스에 갇힌 모든 티탄들에게 자신이 제우스보다 더 강력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가이아는 이 기도를 듣고 이를 이루어 주었고, 헤라는 1년 동안 제우스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자, 헤라는 티폰을 낳았습니다.

헤라는 그 후 티폰을 델포이(Delphi)로 데려가서, 그곳에 사는 암룡(에키드나, Echidna)에게 맡겨 키우게 합니다.

 

티폰이 신들을 도망치게 만든 이야기

이집트 데이르 엘 메디나에서 발견된 셋(왼쪽)을 숭배하는 아페티(오른쪽)의 석회암 비석, 기원전 13~12세기경. 출처: 대영박물관

 

티폰이 올림포스를 공격했을 때, 그의 압도적인 공격력은 신들에게 전에 없던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다행히도, 신들은 목신(牧神) 판(Pan)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습니다. 신들은 모두 이집트와 나일강 유역으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동물의 모습으로 숨어 지냈습니다. 이 이야기는 왜 이집트인들이 동물 숭배를 했는지를 설명하는 아이티올로지적 신화입니다.

  • 아폴론은 매의 모습이 되었는데, 이는 이집트의 신 호루스(Horus)와 유사하며,
  • 헤르메스는 이비스(따오기)가 되었고, 이는 토트(Thoth) 신을 닮았으며,
  • 아르테미스는 고양이가 되어 바스테트(Bastet) 신과 같아졌습니다.
  • 헤파이스토스는 소가 되어 프타(Ptah) 신과 닮았고,
  • 디오니소스는 염소가 되어 오시리스(Osiris) 신과 연결되었습니다.

이집트인들에게 있어 티폰은 파괴의 신 세트(Set)와 동일시되었으며, 기원전 5세기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에 따르면, 이집트 신화에서는 티폰이 한때 우주의 최고 신이었으나, 아폴론(이집트의 호루스)에 의해 폐위되었고, 호루스가 마지막 신왕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비록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의 일부는 아니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웃 문명의 우주론과 충돌 없이 융합하거나 차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티폰이 제우스에게 도전한 방법

티폰과 싸우는 제우스를 묘사한 붉은색 오이노코에, 바람의 무리에 기인, 기원전 320-310년경. 출처: 대영박물관

 

티폰이 태어난 가장 큰 목적은 제우스에게 우주의 지배권을 두고 도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는 전 세대를 무너뜨리는 '계승 신화'라는 그리스 신화의 중심 주제를 따르고 있으며, 근동(근동아시아) 지역의 후루-히타이트(Hurro-Hittite) 문화의 계승 신화와도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Theogony)』에서는 이 이야기를 간결하게 다루고 있으며, 그보다는 티폰이 승리할 경우 우주 전체가 위협받는다는 점에 중점을 둡니다. 이후의 작가들은 이 장면을 더욱 자세히 묘사하였습니다.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Library)』에 따르면, 티폰은 올림포스를 향해 돌진하면서 불타는 바위들을 하늘로 던졌습니다. 신들은 판의 경고를 받고 이집트로 도망쳤고, 동물로 변신하여 숨었습니다. 단 한 명, 제우스(때로는 아테나도 포함)는 남아 티폰과 맞서 싸웠습니다. 제우스는 번개를 던지며 티폰에 맞섰고, 아다만틴(단단한 금속)으로 만든 낫으로 공격하려 했습니다. 이는 과거 우라노스를 거세한 것과 유사한 무기였습니다.

 

하지만 티폰은 카시움 산(Mount Casium)으로 도망쳤습니다. 제우스는 그를 추격했지만, 오히려 티폰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티폰은 제우스를 뱀 같은 몸으로 감고, 그의 손과 발의 힘줄을 잘라냈습니다. 이후 그는 제우스를 킬리키아(Cilicia)의 코리키아 동굴(Corycian Cave)로 데려가 가두고, 잘라낸 힘줄은 따로 숨겨놓은 후 용에게 감시하게 하였습니다.

페르가몬 제단에서 두 거인과 싸우는 모이라, 기원전 2세기경. 출처: 베를린 국립 박물관, 뮌헨

 

그러나 헤르메스가 제우스의 힘줄을 되찾아 붙여주었고, 제우스는 다시 힘을 되찾았습니다. 제우스는 티폰을 뒤쫓았고, 티폰이 니사 산(Mount Nysa)에 도달했을 때, 모이라(운명의 여신들)는 티폰을 속여 디오니소스의 포도를 먹게 했습니다. 그들은 포도를 먹으면 힘이 강해질 것이라 말했지만, 실제로는 반대로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후에도 티폰은 절망적으로 제우스와 싸우며 온 산을 들어 던졌습니다. 그러나 제우스는 번개로 그것들을 박살냈습니다. 결국 티폰이 시칠리아(Sicily)로 도망치자, 제우스는 에트나 산(Mount Etna)을 들어 그 위에 던져버렸고, 그 아래에 티폰을 영원히 가두었습니다.

 

티폰의 투옥 (Imprisonment of Typhon)

검은색 도자기로 제작된 히드리아(Hydria) 항아리에 묘사된 티폰의 모습은 이탈리아 불키(Vulci) 지역에서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7세기에서 5세기 사이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출처: 대영박물관

전승에 따르면, 티폰은 시칠리아의 에트나 산 아래에 갇혀 있으며,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그를 감시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티폰은 그 아래의 감옥에서 화염을 뿜어내며, 이 불길은 헤파이스토스가 신들의 무기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또 다른 전승에서는 티폰이 이집트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는 나일강 삼각주 동쪽, 카시우스 산과 수에즈 지협, 지중해 사이에 위치한 서르보니아 늪(Serbonian Marshes) 아래에 매장되어 있다고 전해지며, 이 이야기 또한 티폰을 이집트의 파괴신 세트(Set)와 동일시하는 전통과 연결됩니다.

 

괴물들의 아버지, 티폰 (Typhon as Father of Monsters)

기원전 5세기경에 제작된 키프로스산 석회암 발받침에는 키마이라(Chimera)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출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티폰은 그리스 신화 속 기이하고 위험한 생물들의 아버지로 여겨졌습니다. 그가 낳은 괴물들은 인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으며, 대부분은 영웅들의 손에 의해 제거되었습니다. 하지만 케르베로스와 같이 저승의 문을 지키는 괴물들은 제우스의 우주 질서 안에 통합되어, 신들의 체계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헤시오도스의 저작에서는 티폰을 '티포이오스(Typhoeus)' 또는 '티파온(Typhaon)'이라는 별개의 존재로 언급하였지만, 이후 작가들은 이 둘을 동일 인물로 간주하기도 하였습니다. 티포이오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마지막 아들로, 제우스를 전복하려다 실패하고 에트나 산 아래에 감금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티파온은 반은 인간, 반은 뱀의 모습을 한 님프 에키드나(Echidna)와 결합하여 여러 괴물들을 낳았으며, 이 괴물들 또한 티폰처럼 혼돈의 상징으로 세상의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제우스에 의해 우주 질서 안에 포함되지 못한 티폰의 자손들이 모두 제거된 이후, 세상은 현재와 같은 질서를 갖추게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티폰은 다음과 같은 괴물들을 자식으로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 오르토스(Orthos):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사나운 개로, 괴물들의 조상격인 존재입니다.
  • 레르네아의 히드라(Lernaean Hydra): 머리를 자를수록 두 배로 다시 자라나는 뱀의 형상을 한 괴물입니다.
  • 네메아의 사자(Nemean Lion): 그 가죽은 무기로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괴물입니다.
  • 카우카수스 산맥에서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매일 먹던 독수리: 영원한 고통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 헤스페리데스의 황금 사과를 지키는 용: 신들의 황금 사과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던 괴물입니다.

이 괴물들은 모두 헤라클레스가 12가지 과업을 수행하면서 처치한 존재들입니다. 또한 티폰은 다음의 괴물들도 낳았다고 전해집니다:

  • 키마이라(Chimera):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뱀의 모습을 한 혼합 생물로, 벨레로폰(Bellerophon)에 의해 처치되었습니다.
  • 콜키스(Colchis)의 황금 양털을 지키던 용: 이 괴물은 이아손(Jason)에 의해 쓰러졌습니다.

소리의 질서

히드리아(Hydria)에 묘사된 티폰(Typhon), 기원전 약 540년경, 아르카익 시대, 흑화 도기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헤시오도스(Hesiod)의 『신통기(Theogony)』는 세상의 질서와 존재들의 기원을 설명하며, 제우스가 신들의 왕이 되는 과정으로 절정을 맞이합니다. 신들의 세대가 교체될 때마다 세상은 점차 더 명확하게 구분되며, 신들은 이름과 권능을 부여받습니다.

 

티폰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우주의 소리와 소통 방식이 어떻게 질서를 갖추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며, 특히 신들과 인간의 목소리에 중점을 둡니다. 헤시오도스는 티폰을 단순히 물리적인 위협이라기보다 소리의 혼란을 상징하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그는 티폰이 만들어내는 혼란스럽고 무시무시한 소리에 많은 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 괴상한 머리들에서 나오는
놀라운 목소리들이 들렸습니다.
때로는 신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고,
때로는 풀려난 황소가 분노에 차서
울부짖는 듯한 소리,
또는 사나운 사자의 포효,
혹은 듣기에도 기이한 강아지들의
짖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때로는 그는 쉿쉿거리며
높은 산들이 그 소리에 울려 퍼졌습니다.” (830–835행)

 

티폰이 내뿜는 혼란스럽고 경계 없는 목소리들은 제우스에게 도전하며 신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 불가능한 세계, 즉 질서 없는 우주의 위협을 의미합니다. 제우스가 이 괴물과 싸우는 장면에서도 묘사는 소리에 집중되며, 제우스는 자신의 번개 소리로 티폰을 압도합니다.

 

“[...] 그는 크고 격렬하게 천둥을 쳤고
대지는 무섭게 울렸으며,
광대한 하늘 위와 바다,
오케아노스의 강들과 타르타로스까지
모두 울려 퍼졌습니다.” (839–841행)

서사시의 뮤즈, 칼리오페(Calliope) 조각상 그리스 원본의 로마 복제품, 기원전 3~2세기경 출처: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티폰의 죽음은 뮤즈들이 태어나는 데 필요한 전제 조건으로 묘사됩니다. 뮤즈들은 질서 있는 노래와 지식을 헤시오도스에게 전해주고, 그는 이를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시에서는 티폰의 목소리를 묘사하는 데 여러 단어가 사용되며, 이 단어들은 서사시의 다른 장면들에서도 신들의 말이나 전쟁터의 소리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띄게 사용되지 않은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우데(αὐδή)’입니다. 이 단어는 서사시에서 신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을 설명할 때에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신통기』에서는 뮤즈들이 헤시오도스에게 목소리를 전달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뮤즈들이 자신들의 신적인 목소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할 때만 헤시오도스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우데(αὐδή)’는 티폰이 갖고 있지 못한 유일한 목소리이며, 그의 수많은 목소리는 아우데를 방해하고, 따라서 뮤즈의 탄생과 신과 인간 간의 소통을 가로막는 역할을 합니다. 티폰은 제우스가 세우고자 했던 우주의 위계질서를 위협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제우스가 티폰을 물리친 것은 뮤즈의 탄생과 신과 인간 간의 명확한 소통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는 세상에 질서를 가져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참고 문헌

  • Clay, J. S. (1993). The Generation of Monsters in Hesiod, Classical Philology, 88(2), 105–116.
  • Goslin, O. (2010). “Hesiod’s Typhonomachy and the Ordering of Sound,” Transactions of the American Philological Association (1974-), 140(2), 351–373.
  • Griffiths, J. G. (1960). “The Flight of the Gods Before Typhon: An Unrecognized Myth,” Hermes, 88(3), 374–376.
  • Hesiod, (기원전 8세기경). 『신통기』 및 『노동과 나날』 (D. Wender 번역), Penguin Group,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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